혈관 건강해야 치매 예방… 건망증 무관

우리나라 65세 이상 1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로 추정된다.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치매 환자가 늘어나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지만,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게 문제다. 따라서 치매를 조기에 발견해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게 최선이다.

건망증과 치매, 증상·원인 달라

  나이가 들수록 자꾸 깜박깜박 잘 잊고 물건이나 사람 이름을 금세 떠올리기 어려워졌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혹시 ‘이른 치매’가 온 게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망증과 치매는 ‘기억력 저하’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증상과 원인이 엄연히 다르다. 건망증은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기억하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일시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장애의 한 증상이다. 노화 과정에서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들이 퇴화하거나 기억력과 관련한 신경물질이 감소하는 게 원인이다.

  건망증은 나이와 무관하게 나타날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 지나친 음주,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선 과부하 상태, 신체 질환 등으로 건강 상태가 악화하면 건망증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치매는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증상이다. 주로 노년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알츠하이머병으로 알려진 퇴행성 뇌질환, 뇌혈관 질환이 원인인 혈관성 치매가 대표적이다. 이외에 파킨슨병 등의 퇴행성 뇌질환과 뇌종양, 대사성 질환 등도 치매를 유발한다.

힌트 줘도 기억 못하면 치매 가능성↑

  건망증은 사건의 전체적인 면은 잘 기억하지만, 세세한 부분은 잊어버리는 게 특징이다. 보통 사물이나 이름 등의 느낌과 형상은 기억하지만, 빨리 떠올리지 못하면 단순 건망증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바로 기억이 떠오르고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면 스스로 생각해내기도 한다. 반면, 힌트를 줘도 기억을 못 하거나 사실 자체를 잊는다면 치매 또는 인지 기능장애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또한 치매는 기억력 감퇴와 함께 다른 증상이 동반될 가능성이 크다. 성격이 변하거나 언어, 시간, 공간, 지각 능력 등이 함께 저하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건망증은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치매 자가진단표’에서 6점 이상이 나온다면 치매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권고한다. 유상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65세 이상 연령에서는 치매를 단순 건망증이나 노화로 오인하기 쉬우므로 치매 증상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가장 좋은 치매 예방법은 운동

  치매를 진단받았더라도 지나치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기르면 증상 발현과 악화를 늦출 수 있다.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는 최선의 방법은 운동이다. 치매 예방책으로도 효과적이다. 적절한 유산소 운동이 좋고, 고령이어도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하루 1시간 정도 걷는 게 좋다. 인지활동이나 사회활동을 지속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동영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걷기는 두뇌의 퇴행성 변화를 줄이는 뇌 영양 인자의 분비를 촉진해 치매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며 “초기부터 적절한 약물치료와 관리가 이뤄지면 8년 뒤 요양시설에 입소해야 하는 수준으로 악화하는 비율은 20%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젊어도 건망증이 생겼다면 조심해야 한다. 치매는 아니지만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이전보다 늘었다면 인지 기능장애의 초기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세가와 요시야 치매 전문의는 저서 ‘백년 두뇌’에서 치매로 발전할 확률이 높은 경도인지장애의 분기점을 40대로 본다. 이 무렵부터 두뇌활동이 젊은 시절보다 저조해지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치매로 이어지기 쉬워서다.

  40대부터 일상에서 뇌 기능을 강화하고, 운동으로 건강 수명을 늘리고, 풍부한 인간관계 등 외부 환경을 잘 관리하면 60대 이후 치매 발생 확률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 심각한 건망증을 겪는 ‘영츠하이머’라는 신조어도 지나친 스트레스와 관련이 크다.

  이와 함께 노화를 앞당기는 산화와 당화를 예방하거나 늦추기 위해선 적절한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

  유상원 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건망증 자체는 질환이 아니고 전부 치매로 발전하지 않지만 건망증 단계에서부터 치매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40대 이후부터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등의 위험 요인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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